앞선 편들에서 우리는 토론에서 오간 논증의 결함을 살펴봤다. 이번 편은 토론장 밖으로 나간다. 전한길–이준석 끝장토론에서도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던 사안, 선관위가 반복적으로 내놓은 공식 해명 하나가 그 해명이 적용되는 시스템의 구조와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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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이후 국내 선거 현장에서 낯선 일이 반복되고 있다.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가 "이미 사전투표를 완료하셨습니다"라는 안내를 받는 사례들이다. 본인은 사전투표를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전산에는 이미 투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선관위의 해명은 일관됐다. "동명이인을 혼동하여 생긴 전산 오류"라는 것이다.
해명의 논리적 빈틈
현행 투표 절차를 생각해 보자. 유권자는 투표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담당자가 선거인 명부에서 해당자를 찾으면, 유권자 본인이 직접 자신의 이름 옆에 서명하거나 도장을 찍는다. 이 마지막 단계가 중요하다. 동명이인이 아무리 많더라도, 본인이 자기 이름과 주소가 적힌 칸을 직접 확인하고 서명하는 절차가 있는 이상, 단순한 동명이인 혼동으로 오류가 발생한다는 설명은 현실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
더구나 한국의 선거 전산 시스템은 이름이 아니라 주민등록번호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주민등록번호는 전 국민에게 단 하나씩 부여된 고유 번호다. 동명이인이 수백 명이더라도 주민번호가 같을 수는 없다. 기술적 관점에서 "동명이인 혼동"은 이 시스템에서 구조적으로 발생하기 어렵다.
논리 분석 — 두 가지 불편한 선택지
이 해명이 맞다면, 둘 중 하나다
첫째, 대한민국 선거 전산 시스템이 주민번호가 아닌 이름으로 조회되는 수준이거나. 둘째, 해명 자체가 사실과 다른 것이거나. 어느 쪽도 선관위 입장에서 유리하지 않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정부 인프라를 갖춘 나라에서 선거 시스템만 그런 후진적 설계라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리고 후자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선관위의 해명이 틀렸다는 단정이 아니다. 해명이 제시하는 논리 구조가 시스템의 실제 작동 방식과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짚는 것이다.
또 하나의 설명 가능성
이 오류를 설명하는 또 다른 가설이 있다. 다소 불편하지만, 논리적 정합성이라는 기준으로만 보면 무시하기 어렵다.
선관위는 모든 유권자의 역대 투표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사회과학적으로도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투표 참여 행태는 상당히 일관된 습관적 패턴을 보인다. 매번 투표하는 사람은 계속 투표하고, 오랫동안 투표하지 않은 사람은 다음에도 투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검토할 가설
상습적 기권자의 이름으로 표를 미리 넣어두는 방식
만약 누군가 이 이력 데이터를 이용해 상습적 기권자 일부를 사전투표 완료자로 전산에 등록하고, 그에 맞는 표를 실제로 투입해 두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기권 성향이 강한 유권자는 이번에도 투표소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주 가끔, 평소엔 투표하지 않던 사람이 어떤 계기로 투표소에 나타난다. 그 순간, 전산에는 이미 그 사람이 사전투표를 마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바로 그 장면이 "유권자 이력 오류"로 보고되는 현상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 가설의 구조적 특성 중 하나는, 실제로 그런 일이 있더라도 외부에서 관찰되는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미 투표가 기록된 유권자가 투표소에 나타날 때만 문제가 가시화된다. 나머지는 조용히 묻힌다. 따라서 몇 건의 이상 사례가 보고되었다는 것은, 실제 규모는 보고된 것보다 훨씬 클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가설이다. 이 가설이 사실임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기존의 공식 해명보다 관찰된 현상을 더 일관되게 설명한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검증을 가로막는 구조
이 모든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 단순하다. 세 가지면 충분하다. 첫째: 선거 전산 시스템에 대한 독립적이고 기술적인 감사. 둘째: 투표함 보관 기간의 CCTV 전체 공개. 셋째: 전수 재검표.
그런데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선관위는 독립적 기술 감사 요구에 응하지 않아 왔다. 2023년 국가정보원과 한국인터넷진흥원이 보안 점검을 실시했을 때 상당한 취약점이 발견되었음에도, 선관위는 "실제 선거에서 악용된 증거는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법원 역시 선거 시스템에 대한 강제 감사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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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문제 — 감독과 피감독의 동일 직역
선관위 위원장은 대법관, 선거 소송은 법원이 관할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은 관례적으로 대법관이 맡는다. 그리고 선거 소송은 법원이 관할한다. 동일한 직역에 속한 인물이 감독기관의 수장을 맡고, 그 기관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같은 직역의 동료들이 내린다. 이 구조에서 완전한 독립성을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법관 개인의 청렴성 문제가 아니다. 구조가 독립성을 보장하는가의 문제다. 아무리 청렴한 개인이라도 구조적 이해충돌은 존재할 수 있다.
전수 재검표는 2000년대 초 대선 이후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전투표 제도가 도입된 2013년 이후로는 단 한 차례도 없다. 가장 검증이 필요한 시스템에 대해,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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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은 음모론이 아니다
의혹을 제기하는 것과 단정하는 것은 다르다. 이 글은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세 가지를 지적하는 것이다. 공식 해명이 논리적으로 취약하고, 대안적 설명이 일정한 정합성을 가지며, 이를 해소할 수 있는 검증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
선거의 신뢰성은 민주주의의 토대다. 그 신뢰는 "믿어 달라"는 요청으로 쌓이지 않는다. 투명한 검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검증을 거부하면서 결과에 승복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는 오류가 반복되고, 검증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언론이 이를 깊이 다루지 않는 상황. 이 구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신호다. 합리적 의심은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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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작 새설이 내내 말해온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의혹을 잠재우는 것은 의혹 제기자를 논쟁에서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내놓는 것이다. 그 설명이 없는 자리에 불신은 자란다. 그리고 자라난 불신은 민주주의가 치러야 할 가장 비싼 비용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