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통영에서, 정책과 비전의 대결을 기대하는 것은 이미 한참 전에 허망한 일이 되어버렸다.
지난 며칠 사이 이 도시의 선거판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착잡함이 앞선다.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민주당 강석주 후보를 지지해온 전직 도의원이 식당에서 유권자들에게 식사비를 건네다 현장에서 적발되어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이 사건이 수면 위로 오르기 무섭게, 이번에는 국민의힘 천영기 후보 아들의 사생활 문제를 담은 기사들이 지역 언론에 잇따라 게재됐다. 이틀 사이 통영 시민들은 금품선거 혐의와 성인 자녀의 불륜 의혹을 연달아 마주해야 했다.
이것이 지금 통영시장 선거의 민낯이다.
물론 두 사안의 성격은 다르다. 식사비 대납 혐의는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가 수사 대상이 된 사안이고, 후보 아들의 사생활 문제는 본질적으로 민사의 영역이다. 천영기 후보 측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이번 의혹 제기의 배후에 상대 진영이 있다고 주장하며 제보자 남편 A씨와 관련 언론사를 법적으로 처벌하겠다고 예고했다. 강석주 후보 측은 이에 맞서 천 후보 측 성명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선관위에 고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맞불을 놓았다. 양측 모두 법적 대응을 선언한 채 투표일을 맞게 됐다.
진실이 어느 쪽에 있는지는 이 글이 판단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다만 몇 가지는 차분히 짚어볼 수 있다.
우선 근본적인 물음 하나. 성인 자녀의 이성 문제가 공직 후보를 검증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가. 후보의 공적 자질과 판단력, 과거 행적, 정책 역량은 마땅히 검증의 대상이다. 그러나 이미 독립적인 삶을 사는 성인 자녀의 사생활까지 후보의 도덕성으로 귀결시키는 것은, 그 논리의 끝이 어디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성인 아들의 이성 관계를 후보에게 묻는 것은, 우리가 어디까지를 공인의 책임으로 볼 것인가 하는 좀 더 깊은 질문을 요구한다.
남편 A씨가 언론에 나와 전한 내용은, 그 자체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스트레스로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 고통이 진짜라면 한 인간으로서의 피해는 분명 실재하는 것이다. 실제로 두 사람이 같은 학교에 재직하다 비슷한 시기에 떠났다는 사실은 확인된 것이고,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관련자들만이 온전히 알 것이다. 불륜이 사실일 개연성을 아예 닫아버릴 근거는 없다.
그러나 A씨를 바라보다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장면들이 있다. 그는 돈도 정치도 아무 의미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거판이 가장 뜨겁게 달아오른 시점에 언론 앞에 나섰다. 가정을 지키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배우자의 행위를 공연성 높은 지면에 가장 자극적인 언어로 풀어놓았다. 두 살배기 아이 앞에서의 불륜을 굳이 명시한 것은, 가정을 지키려는 사람의 표현이라고 하기에는 그 수위가 지나치다. 그 가정에는 아이들이 둘이나 있다. 엄마에게 씌워진 그 주홍글씨를 아이들은 어떻게 감당하라는 것인지, 정작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천 후보 측은 A씨가 후보 아들을 불러내 아버지의 지위를 의식한 듯 거액의 돈을 요구했다고 주장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육성 녹취를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의 호소에서 남는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고통이 진짜였다면, 그 고통은 그것 하나로도 충분히 무거웠어야 했다. 정치적으로 극도로 민감한 시점을 골라 언론 앞에 나선 것과, 후보 아버지의 사회적 지위를 겨냥한 듯한 거액 요구, 이 두 가지는 말과 행동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녹취가 존재한다면, 그 거리는 더욱 벌어진다. 진정성이란 일관성 속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그런데 이 소란 한가운데, 정작 아무도 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남편은 스스로 언론 앞에 나섰다. 폭로의 주체가 되는 것은 그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 옆에 있던 여성은 그렇지 않다. 그는 발언권이 없는 채로 이 사태의 중심에 놓였다. 이름 대신 '기간제 교사'라는 직함으로, 당사자의 진술 없이 타인의 언어로만 묘사되었다. 그의 삶은 투표일 직전의 폭로 속에 통째로 끌려 나왔고, 이제 통영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그 이름과 사연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불미스러운 일이 사실이라면, 그는 이미 오랫동안 충분히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왔을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선거판의 소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이 여성이 감당해야 할 무게는 달라지지 않는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당선자가 정해진 뒤에도, 그는 이 도시에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가 길을 걸을 때, 아이를 데리고 마트에 갈 때,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 때, 그 무게는 선거가 끝난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충무신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풍경은 낯설지 않다. 막판 타격, 대응할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 폭로, 정책 대신 도덕성 공방. 구태는 특정 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런데 구태 정치가 반복될 때마다 그 비용을 가장 혹독하게 치르는 것은 후보도 캠프도 아니다. 이름 없이 소비되고 남겨지는 사람들이다.
이번 통영시장 선거는 시민의 삶을 이끌어갈 사람을 뽑는 자리였다. 투표는 내일이다. 이 모든 소란 속에서도 통영 시민들이 자신이 원하는 통영의 모습을 떠올리며 투표장에 들어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