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차 권한은 누구를 향해 있는가: 차량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 한국의 장애인 주차 구역은 차량과 연계되어 있다. 특정 차량을 국가에 등록하고 그 차에 주차 표지를 부착해야만 혜택을 받는 방식이다. 행정적 관점에서는 효율적이다. 등록된 차량 번호와 주차된 차의 번호가 일치하는지만 확인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득 질문을 던지게 된다. 장애는 사람에게 있는데, 왜 그 권리는 차에 귀속되어 있을까.

      영국의 ‘블루 배지(Blue Badge)’ 제도는 시선이 다르다. 권리의 주체는 차량이 아니라 장애인 개인이다. 배지를 소지한 장애인이 타고 있다면 그 차가 가족의 것이든, 친구의 것이든, 혹은 빌린 차든 상관없이 주차 구역을 이용할 수 있다. 권리가 번호판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셈이다.

      두 제도의 차이는 이동권을 바라보는 철학에서 비롯된다. 한국식 차량 중심 제도는 관리가 용이하지만, 자기 차가 없는 장애인의 사정을 살피지 못한다. 건강이나 경제적 이유로 차를 소유하지 못한 장애인은 타인의 도움을 받아 이동할 때조차 주차 구역 앞에서 자격을 증명하지 못하는 모순에 부딪힌다. 이동의 자유가 자동차 소유 여부와 결합하면서, 제도의 혜택이 선별적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사람 중심 제도는 부정 사용에 취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부정 사용을 막기 위해 이동권의 본질을 제한하는 것은 우선순위가 바뀐 선택일 수 있다. 제도의 허점은 디지털 인증이나 사진 부착 같은 기술적 보완으로 해결할 일이지, 그것이 권리의 범위를 좁히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동권의 본질은 ‘차를 소유할 권리’가 아니라 ‘어디서든 이동할 수 있는 권리’다. 고령 장애인이 늘고 이동 수단이 다변화되는 오늘날, 차량 한 대에 권리를 묶어두는 방식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제는 번호판이 아닌 사람을 보아야 할 때다. 어떤 차를 타더라도 소지한 배지 하나로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증명할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제도가 지향해야 할 본래의 모습일 것이다. 권리의 주인은 차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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