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누군가 유권자들에게 밥값을 대신 내주거나 돈봉투를 건네다 적발되고, 그 옆에는 후보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런데 정작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쪽은 대개 돈을 건넨 실행자뿐이다. 후보자 본인은 "몰랐다", "인사만 하고 왔다"는 해명과 함께 수사 선상에서 비켜선다. 민주주의의 적이라 불러야 할 이 행위 앞에서, 정작 그 적의 몸통은 매번 이렇게 빠져나간다. 이런 결과가 반복된다면, 그것이 개별 사건의 우연인지 아니면 판례가 만들어낸 구조적 결과인지를 물어야 한다.
금품을 매개로 한 표심 매수는 단순한 부정행위가 아니다. 유권자의 자유의사를 돈으로 무력화한다는 점에서, 선거의 정당성 자체를 갉아먹는 범죄다. 그래서 공직선거법은 제3자 기부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이를 어긴 사람을 처벌한다. 문제는 그 처벌의 그물이 누구를 빠져나가게 설계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판례상 후보자 본인이 공모공동정범으로 처벌되려면, 단순히 금품 제공자의 전화를 받고 현장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한다. 금품 지급에 관한 구체적인 합의나 역할 분담, 이른바 '기능적 행위지배'가 있었다는 정황까지 입증돼야 한다는 것이 실무의 설명이다. 이 기준 자체는 죄형법정주의와 각자책임 원칙에 뿌리를 둔, 나름의 논리를 갖춘 법리다.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의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는 것은 형사법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원칙이 선거 현장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들여다보면, 뜻하지 않은 비대칭이 생긴다. 돈을 직접 건넨 사람은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붙잡히고, 그 행위 자체가 명백한 물증이 된다. 반면 그 돈이 누구를 위해, 누구의 묵인 아래 오갔는지는 대개 말로 남지 않는다. "식사비는 네가 내라"는 말을 굳이 육성으로 남기고 다니는 후보는 없을 것이다. 결국 가장 결정적인 순간의 의사소통은 침묵과 암묵 속에서 이뤄지고, 그 침묵은 법정에서 무죄추정의 이익으로 되돌아온다. 돈을 쓴 사람과 그 돈의 수혜자 사이의 책임이 갈라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이 구조가 문제적인 이유는, 유권자를 돈으로 매수하려는 유인이 애초에 후보자 쪽에 있기 때문이다. 표를 얻어야 할 사람은 후보자이지, 그를 위해 봉투를 돌리는 조력자가 아니다. 그런데 정작 형사책임의 무게중심은 조력자 쪽으로 쏠린다. 이런 비대칭이 반복되면, 후보자 입장에서는 금품 살포의 위험을 조력자에게 전가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 되어버릴 수 있다. 법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 그런 유인 구조를 만들어낼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낯선 구조는 아니다. 지시를 내리는 자와 그 지시를 실행하는 자가 분리된 범죄에서는 늘 비슷한 문제가 반복돼 왔다. 조직범죄에서 배후의 지휘자는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 않기에 증거가 남지 않고, 정작 처벌받는 쪽은 앞에서 실행한 말단만인 경우가 많다. 흔히 "몸통은 놔두고 깃털만 친다"는 말로 비판받아온 구조다. 선거에서 후보자와 그 주변 조력자의 관계도, 형사책임의 분배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와 다르지 않은 그림을 그린다. 이득을 보는 쪽은 정점에 있고, 위험을 감수하는 쪽은 그 앞에 서 있다.
지시가 눈빛이나 관계, 정치적 위계 속의 암묵적 기대로 전달됐다면 법이 그 이심전심을 붙잡기 어렵다는 것은 그렇다 치자. 그런데 설령 말로 분명하게 의사를 주고받았다 하더라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대화를 들은 사람이 스스로 나서서 증언하거나, 당사자 중 누군가 자백하지 않는 한, 오간 말은 애초에 기록으로 남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 구조에서 처벌을 가르는 것은 무엇을 주고받았는지가 아니라, 누가 스스로 입을 여느냐일 때가 많다.
그렇다면 실제로 후보자가 처벌에 이르는 경우는 무엇이 다른 것일까. 조력자가 스스로 후보자를 지목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정치적 관계와 향후 재기용에 대한 기대가, 침묵을 지킬 유인으로 훨씬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문자메시지나 계좌 흐름처럼 우연히 남은 물증, 혹은 처음의 거짓 해명이 나중에 뒤집히는 경우처럼 은폐 시도 자체가 새로운 정황이 되는 경우가 더 결정적인 경로에 가깝다. 결국 처벌 여부가 법리의 엄정함보다 우연히 남은 흔적의 유무에 좌우된다면, 그 자체가 이 구조의 허점을 보여주는 셈이다.
물론 대안이 간단하지는 않다. 입증책임을 낮추면 무고한 후보자가 억울하게 연루될 위험이 커진다. 일부 국가에서는 선거운동원의 위법행위에 대해 후보자에게도 일정한 감독·관리 책임을 지우는 입법례가 있지만, 이 또한 지나치면 방어권 침해 논란을 부를 수 있다. 다만 적어도, "함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원칙과 "그렇다면 무엇이 더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지금보다 더 활발해질 필요가 있다.
돈으로 표를 사는 행위가 왜 중대한 범죄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그 중대성에 값하는 처벌이, 실제로는 그 범죄로부터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을 비켜가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점이다. 판례가 후보자 개인의 방어권 보호에 무게를 두는 사이, 그 무게중심은 결과적으로 매수 구조 전체를 방치하는 쪽으로 기운다. 이 점을 계속 외면한다면,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이 익숙한 장면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