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직이 자신에 대한 검증 요구를 거부할 수 있고, 그 거부가 정당했는지를 사후에 판단하는 권한마저 그 조직과 가까운 곳에 있다면 — 이 구조는 평상시에는 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무분별한 이의제기로부터 절차를 지키는 방벽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구조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다. 만약 그 조직 내부에 실제로 잘못이 있을 경우, 이 구조는 잘못을 걸러내는 장치가 아니라 잘못을 숨기는 장치로 정확히 똑같이 작동한다는 점이다.
27일 밤 통영시장 재검표 현장에서 벌어진 일들을 다시 짚어보면 이 구조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참관인 측은 인주가 아니라 인쇄로 찍힌 것으로 의심되는 투표지를 발견했다며 확대경으로 그 자리에서 대조해볼 것을 요구했다. 선관위 측은 참관인이 지참한 도구의 신뢰성을 문제 삼아 이를 거부했다.
이 거부의 논리 자체는 흠잡을 데 없다. 검증되지 않은 개인 장비의 판정을 공식 절차에 반영할 수 없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타당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선관위가 이 원칙을 지키려면, 최소한 "그렇다면 신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지금 확인해보자"는 대안을 함께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대안 제시 없이 "별도 보관 후 추후 판정"이라는 결정만 내려졌다.
원칙은 지켰지만, 그 원칙이 결과적으로 무엇을 낳았는가. 문제 제기된 표들은 눈앞에서 사라졌고, 그것들이 실제로 무엇이었는지는 기약 없는 "추후"로 미뤄졌다.
더구나 그 "추후"조차 모든 의혹에 똑같이 적용되지 않았다. 인쇄 의심 기표는 별도 보관이 결정된 반면, 접힌 흔적 없는 '벽돌 투표지' 다발에 대해서는 이의제기가 계속되자 선관위가 "시간이 길어진다"는 이유로 아예 이의 자체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이후 나온 벽돌 투표지들은 분류조차 되지 않고 그대로 개표에 섞여 들어갔다. 같은 밤, 같은 성격의 의혹인데도 처리 방식이 갈린 이유는 아직 설명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논란은 결국 하나의 숫자로 수렴됐다. 44표에서 38표로 좁혀졌다는 이번 재검표 결과는, 실은 이런 논란의 표들을 전부 유효로 셈한 위에서 나온 숫자다.
판정을 미룬 표들을 일단 셈에 넣고 확정한 결과라는 점에서, 이 38표는 논란이 끝난 자리에서 나온 숫자가 아니라 논란을 안은 채로 나온 숫자다.
이 우려가 추상적인 걱정만은 아니라는 것을, 기자는 그날 현장에서 직접 확인했다. 소청인 측이 훼손된 봉인과 보관상자 상태에 문제를 제기하자, 이영훈 경남선관위원장은 CCTV 녹화 기록으로 보완이 가능하다는 취지로 답했다.
한 참관인이 이를 받아, 통영시선관위 측에 확인한 결과 해당 장소에는 애초 CCTV가 없었다고 곧바로 반박했다. 잠시 후 그는 뒤편에 있던 취재진에게 들리도록 관련 녹화 영상을 재생해 보였고, 기자는 그 자리에서 이를 직접 들었다.
다만 위원장이 이 반박과 영상을 실제로 들었는지, 듣고도 별다른 대응 없이 자신의 답변을 이어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 위원장의 답변과 그 산하 통영시선관위의 확인 내용이, 적어도 뒤편에 있던 취재진의 귀에는 서로 어긋나는 것으로 들렸다는 사실이다.
이날 밤 벌어진 다른 장면들도 비슷한 결을 그린다. 재검표 과정을 촬영하겠다는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진은 허용하되 영상은 불허한다는 구분에 대해서는 끝내 설명이 없었다.
취재진은 첫 번째 상자 개봉 이후 별다른 이유 없이 현장에서 퇴장당했고, 이후 절차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아무도 지켜보지 못했다.
개개의 조치는 각각 나름의 사유(장비 신뢰성, 절차 방해 우려, 촬영 제한 방침, 녹화 기록의 존재, 시간 지연)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유들이 겹겹이 쌓이는 방향은 언제나 하나였다 — 확인의 문을 닫는 쪽.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이 글이 통영에서 실제로 투표지가 위조됐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보다 앞선 질문이다 — 설령 위조가 실재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방식의 재검표 절차가 그것을 걸러낼 수 있는가.
검증 도구를 문제 삼아 확인을 미루고, 그 자리에서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취재 접근을 차단하고, 스스로의 답변이 산하 기관의 확인과 어긋나도 그 모순을 바로잡을 절차가 없으며, 판정을 미룬 표들을 일단 유효로 셈해 결과부터 확정해버리는 이 조합은, 조작이 없을 때는 그저 과도하게 방어적인 관료제로 보이지만, 조작이 있을 때는 그 조작을 완벽하게 감춰주는 환경이 된다.
두 경우의 겉모습은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이 문제의 핵심이다.
더욱이 이 우려를 단순한 가정으로만 남겨두기 어렵게 만드는 사건이 최근 별도로 확인됐다. 6·3 지방선거 당시 선관위 실무자들이 투표율 통계를 정식 절차 없이 임의로 고쳐 입력한 정황이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압수수색으로 드러났고, 해당 직원들은 "최종 수치만 맞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취지로 해명했다고 한다.
이것이 보여주는 것은 통영의 투표지가 위조됐다는 증거가 아니다. 다만 이 조직 내부에 절차를 우회해 숫자를 만질 수 있는 여지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조직이 "검증 도구를 믿을 수 없다"며 자체 판단으로 확인을 미룰 때, 그 판단을 곧이곧대로 신뢰해야 할 근거는 예전보다 확실히 줄어들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이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독립성을 부여한 기관이다. 그러나 독립성은 검증으로부터의 면제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적 개입을 받지 않는 만큼, 그 자신에 대한 검증에는 누구보다 열려 있어야 그 독립성이 정당화된다.
지금 선관위가 보여주는 태도 — 원칙은 지키되 그 원칙이 낳는 불투명함에는 무심하고, 자기 발언과 산하 기관의 확인이 어긋나도 그 모순을 스스로 해명하지 않으며, 판정 없는 표들을 셈에 넣어 결과부터 내놓는 태도 — 는 단기적으로는 절차적 승리를 가져다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승리가 반복될수록, "이 조직은 확인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확인할 게 없어서 저러는 것"이라는 믿음은 옅어지고, "확인을 거부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만 남는다. 신뢰란 그렇게, 정당한 절차를 밟고도 조용히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