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검표는 발표가 아니라 증명이다재검표라고 하면 흔히들 표를 다시 한번 세어보는 일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무거운 절차다. 투표지가 원래 상태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는지, 개수는 맞는지, 어떤 표를 유효로 어떤 표를 무효로 판단했는지, 그리고 그 판단이 당일 기록된 서류들과 어긋나지 않는지를 하나하나 다시 확인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재검표는 "결과가 이렇습니다"라고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라, "이 결과가 왜 맞는지 지금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증명하는 자리에 가깝다. 그런데 증명이라는 것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기억에만 의존해서는 나중에 다시 확인할 방법이 없다. 누가 봐도 나중에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기록이 남아야, 그 증명이 비로소 증명으로서 힘을 갖는다.
여덟 가지 요구, 돌아온 답은 하나
천영기 전 통영시장 측이 재검표 현장의 촬영을 요구하는 근거는 여기에 있다. 소청대리인 도태우 변호사가 지난 16일 경남선관위에 접수한 8개항의 요구 가운데는 촬영권 보장 외에도 투표함 봉인 상태의 양측 확인, 개표 당시 자료의 사전 제공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가운데 자료 제공은 재검표 5일 전까지 이루어져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그 마감일이었던 지난 22일, 경남선관위가 내놓은 답은 8개 항목 중 단 하나, 그것도 온전한 승인이 아니었다. 사진 촬영은 허용하되 영상 촬영은 불허한다는 것이었다.
사진은 결과를, 영상은 과정을 담는다
이 결정이 갖는 의미를 따져보자. 재검표는 수만 장의 투표지를 짧은 시간 안에 순차적으로 판정해 나가는 절차다. 어떤 표가 어떤 이유로 유효 또는 무효로 분류되었는지, 이의가 제기된 표가 어떤 논의를 거쳐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정지된 한 장의 사진으로는 재구성되지 않는다. 사진은 결과의 단면을 보여줄 뿐, 그 결과에 이르는 판단의 과정은 보여주지 못한다. 반면 영상은 판정이 내려지는 순간의 연속성을 담아낸다. 이후 이 재검표 결과를 두고 법적 다툼이 이어질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증거로서의 가치를 가지는 쪽은 영상이지 사진이 아니다. 소청인 측이 애초에 요구한 것이 사진이 아니라 영상이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좁은 자리, 적은 인원, 그리고 없는 기록
이 문제는 참관 여건의 다른 제약과도 맞물려 있다. 이번 재검표의 참관인 규모는 12명으로, 선거관리위원회 편람상 가능한 18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재검표 장소인 경남선관위 대회의실 역시 8~90석 규모로 넓지 않다. 좁은 공간과 제한된 인원 속에서 육안 참관만으로 모든 판정 과정을 놓치지 않고 확인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영상 기록은 바로 이 한계를 보완할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런데 그 수단마저 허용되지 않는다면, 참관의 실질은 형식만 남긴 채 비어버리는 셈이다.
사유 없는 거부는 거부가 아니라 침묵이다
물론 선관위에도 나름의 사정이 있을 수 있다. 촬영이 재검표 절차의 질서를 해치거나, 관계자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라면 검토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면 될 일이다. 소청인 측이 회견문에서 요구한 다섯 가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촬영 제한 시 구체적 사유 공개'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유를 밝히지 않은 채 결과만 통보하는 방식으로는, 그 결정이 합리적 판단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 따른 것인지 국민이 확인할 길이 없다.
두려울 이유가 없다면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절차가 공정하게 진행된다면, 그 절차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두려울 이유가 무엇인가. 재검표가 정확하다면, 촬영은 그 정확성을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될 것이다. 반대로 촬영을 거부한다면, 그 거부 자체가 하나의 신호로 읽힐 수밖에 없다. 물론 이는 선관위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근거를 밝히지 않은 거부는, 의도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의심을 낳는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승복과 침묵은 다르다
민주주의에서 선거 결과에 대한 승복은 패자의 미덕이기 이전에, 그 결과가 승복할 만한 절차를 거쳐 도출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에서 나온다. 이는 표 차의 크기와는 무관한 원칙이다. 스스로 비용을 부담하며 절차에 이의를 제기한 쪽이 있다면, 그 절차의 투명성을 요구할 권리는 표 차가 44표든 4400표든 달라지지 않는다. 이번 선거가 44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갈렸다는 사실은 이 요구에 절박함을 더할 뿐, 요구 자체의 정당성을 만들어내는 근거는 아니다. 다만 그 절박함 속에서도 확인의 절차가 불투명하다면, 승복은 강요된 침묵과 구별되지 않는다. 그리고 강요된 침묵 위에서 출범하는 정치 체제는, 설령 법적 절차를 모두 거쳤다 하더라도 그 정당성의 기반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선관위가 지금 지키고 있는 것이 절차의 원칙인지, 아니면 그저 기존 관행인지는 이 질문에 답하는 방식에서 드러날 것이다.
남은 시간은 사실상 하루뿐이다
재검표는 오는 27일 오후 2시 경남선관위 대회의실에서 시작된다. 이번 재검표에 드는 비용은 관련 법령에 따라 소청을 제기한 천 전 시장이 전액 부담한다. 그러나 이 나흘은 실질적으로 나흘이 아니다. 내일이 지나면 주말이 이어지고, 그다음은 재검표 당일이다. 선관위가 스스로 밝힌 방침에 구체적 근거를 채워 넣을 수 있는 시간은, 사실상 내일 하루뿐이라는 뜻이다. 그 하루 동안 선관위가 무엇을 내놓는지, 혹은 무엇을 내놓지 않는지가 이번 재검표 전체의 신뢰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