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 되면 과거의 실적은 저마다 다른 언어로 번역된다. 강석주 통영시장 후보가 공약발표 기자회견에서 꺼내 든 통영국제트리엔날레 방어 논리도 그중 하나다. 천영기 후보 측이 이 행사를 '혈세 낭비'로 비판하자 강 후보는 "폐조선소 공간을 세계적인 문화 거점으로 바꾸려 했던 담대한 도전"이라며 오히려 비판하는 쪽의 식견 부족을 꼬집었다. 이 말에는 진실의 일부가 들어 있다. 그러나 반만 맞는 말은 때로 전부 틀린 말보다 더 위험하다.
행사의 개요와 규모
2022년 3월 18일부터 5월 8일까지 52일간 열린 제1회 통영국제트리엔날레는 강석주 전 시장의 핵심 공약 사업이었다. 조선업 침체로 쓰러진 통영 경제의 대안을 문화 관광 산업에서 찾겠다는 취지였다. 폐업한 옛 신아SB조선소 연구동을 주제전 전시관으로 탈바꿈시키고, 11개국 35팀이 미술·음악·무용·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융복합형 국제 예술제를 통영 시내는 물론 한산도·사량도·연화도 등 섬 일대에까지 펼쳤다. 규모 면에서는 분명 통영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형 문화 기획이었다.
예산은 시비 48억 원과 도비 32억 원을 합쳐 총 80억 원이 투입됐다. 여기에 사전 종합 실행 계획 용역비 2억 6천만 원, 전시공간 조성 및 행사 운영 용역 33억 7천만 원 등이 포함돼 있다.
'담대한 도전'의 이면에서 불거진 것들
문제는 행사 기획과 준비 과정에서부터 시작됐다. 2021년 행사 운영 용역 입찰 과정에서 특정 업체 밀어주기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낙찰된 FM이벤트 측과 특수관계에 있는 인물이 평가위원에 포함됐다는 의혹이었고, 탈락 업체들은 지자체 계약법 위반이라며 반발했다. 또한 행사 준비 과정에 공식 직함도 없는 인물이 개입해 '비선 실세' 논란이 일었고, 섬 연계전 준비가 비공식 경로로 이뤄지면서 현장 예술가와 추진단, 용역사 간의 비용 분쟁으로까지 번졌다. 이것은 행사 자체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80억 원이 넘는 공적 자금이 투입된 사업의 추진 과정이 얼마나 투명하고 엄정하게 관리됐는지에 대한 의문을 남겼다.
지역 예술인과 시민들의 반응도 애초부터 냉담한 편이었다. "뉴욕과 베를린,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아닌 통영이기에 가능한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준비 단계에서부터 나왔다. 통영의 자랑인 12공방 전통공예와 지역 예술은 정작 행사의 중심 색채에서 멀어졌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 — 그래서 결과는 무엇인가
그러나 모든 논란을 제쳐두고 가장 냉정하게 물어야 할 것은 결과다. 80억 원을 투입한 이 행사가 통영 경제와 문화에 어떤 지속 가능한 유산을 남겼는가.
이름이 시사하듯 트리엔날레는 3년마다 반복하는 예술제다. 그런데 2022년 제1회를 마지막으로 공식 홈페이지에는 "다음 행사 때 찾아뵙겠습니다"라는 문구만 남긴 채 2025년에 열렸어야 할 제2회 행사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강석주 전 시장이 재선에 실패하면서 사업의 구심점이 사라진 탓이 크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드러낸다. 80억 원을 투입해 출범시킨 국제 예술 브랜드가 시장 한 사람의 임기와 운명을 같이할 만큼 제도적 기반이 취약했다면, 그 기획은 처음부터 지속 가능성의 검증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재선에 성공했다 해도 2회를 계획대로 개최할 수 있었을지는 별개의 물음으로 남는다. 80억 원을 들여 출범시킨 국제 예술 브랜드가 1회로 사실상 종료된 것이다. '3년마다 돌아온다'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국제 예술제의 핵심인 지속성과 브랜드 축적의 효과는 처음부터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뜻이기도 하다.
관람객 수나 지역 경제 파급 효과에 대한 공식적이고 투명한 사후 검증 자료도 공개되지 않았다. '성황리에 종료됐다'는 주최 측의 자평 외에 시민이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성과 지표가 제시된 바 없다.
소도시의 딜레마 — 기회비용의 무게
강 후보의 말처럼 통영은 예술의 도시가 맞다. 전혁림이 나서 평생을 살았고, 이중섭이 머물렀으며, 윤이상이 태어난 도시다. 박경리의 토지가 주로 펼쳐진 무대는 진주지만, 그 역시 통영이 낳은 작가다. 조선업 침체 이후 문화 관광으로 도시의 새 활로를 찾겠다는 방향 자체가 틀린 것도 아니다. 폐조선소를 문화 공간으로 전환한 발상 역시 창의적이었다.
그러나 통영은 인구 11만의 소도시이고, 재정자립도는 경남 내에서 최하위권을 맴돈다. 강 후보 스스로도 이번 공약에서 "재정자립도 꼴찌의 부끄러움을 씻어내겠다."고 말할 만큼 재정 여건이 취약하다. 그런 도시에서 단 한 번의 행사에 80억 원을 쓰는 것은, 성공할 때와 실패할 때의 무게가 서울이나 광주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광주비엔날레나 부산비엔날레처럼 수십 년의 역사와 전국적 인지도를 가진 행사들도 지속적인 국비 지원과 광역시의 재정을 기반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한다. 작은 도시가 국제 예술제 브랜드를 독자적으로 안착시킨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고, 성공한 경우는 대부분 수십 년의 집념과 실패의 반복 끝에 이뤄졌다.
80억 원은 노인 복지, 청년 일자리, 학교 시설 개선, 어민 지원 등 시민의 일상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여러 사업에 쓰일 수 있는 돈이었다. 사업의 의도가 아무리 고상해도, 공공 재정을 쓰는 결정에는 기회비용이 따르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물어져야 한다.
'도전'과 '무모함'의 경계
담대한 도전과 무모한 시도는 종이 한 장 차이다. 그 차이를 가르는 것은 사전의 치밀한 타당성 검토, 투명한 추진 과정, 그리고 결과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책임이다. 제1회 통영국제트리엔날레는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
행사를 '혈세 낭비'로 단정하는 것이 예술에 대한 몰이해일 수 있듯, 비판을 '담대한 도전에 대한 무지'로 일축하는 것도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시민의 세금으로 시행된 모든 정책은 결과로 말해야 하고, 그 결과에 대해 답해야 한다.
선거 무대에서 트리엔날레를 다시 꺼내 드는 것이 진정 통영의 문화적 자부심을 위한 것이라면, 먼저 이 물음에 성실하게 답하는 것이 순서다. 그 80억 원은 무엇을 남겼는가. 그리고 왜 제2회는 열리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