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예술소설의 거장 유익서 소설가와 이야기 시의 새로운 지평을 연 이중도 시인이 11월 24일 윤이상기념관 메모리홀에서 열린 합동 북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전통 가야금 산조의 장단 구조를 무대의 흐름으로 삼은 이번 공연은, 문학·음악·무용이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엮여 관객의 큰 찬탄을 얻었다.
■ 전통 장단으로 엮인 한 편의 공연
행사는 진양조의 느린 숨으로 시작해 중모리·엇모리·자진모리·굿거리·휘모리로 이어지는 산조의 장단 구조 속에서 전개됐다.
가야금 연주가 문을 연 1부에서는 두 작가의 문학 세계가 중심이 되었고, 소프라노의 가곡과 배우들의 작품 낭독이 장단의 변화에 맞춰 무대의 결을 넓혔다.
클라이맥스인 휘모리에서는 두 작가가 다시 무대에 올라 창작의 뿌리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공연의 흐름이 가장 높은 지점에 도달했다. 마지막으로 한국 근대무용의 유산인 ‘가사호접’이 펼쳐지며 무대는 장중한 여운 속에 조용히 닫혔다.
■ 유익서 - 작품의 원천은 공부의 누적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 질의응답은 두 작가의 창작 철학을 가장 생생하게 드러낸 시간이었다. 사회자는 “두 분을 오늘 조금 고문하겠다.”는 출사표를 던졌고, 관객은 무대가 가진 긴장과 유머의 균형 속으로 자연스럽게 끌려들었다.
유익서 작가는 새 작품 《김형의 뒷모습》을 두고 “맨 마지막의 ‘빛’이라는 소설부터 올해 봄까지 정확히 9년이 걸렸다”고 말하자, 사회자가 “작품 하나 쓰는 데 9년씩 걸리면 영업이 되겠느냐”고 농을 던졌고 객석에서는 큰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이어진 유익서 작가의 설명은 무대를 단박에 숙연하게 만들었다. “저는 소리를 늦게 배웠습니다. 처음 박초월 선생의 판소리를 들었을 때는 ‘저게 음악인가’ 싶었지요. 그런데 그 이질감이 저를 공부로 이끌었습니다. 4~5년 동안 관련 책을 파고, 현장을 찾아가고, 남원 강도근 명창 곁에서 열흘 동안 제자 가르치는 걸 지켜보며 공부했습니다. 작가는 결국 공부에서 시작합니다.”
관객들은 전통 예술을 향한 작가의 몰입과 자료 조사, 조사자의 자리에서 견뎌온 긴 시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 이중도 - ‘시는 정의하는 순간 멈춘다’
이어 이중도 시인은 ‘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시를 정의하는 순간 한 치도 나아갈 수가 없어진다.”며, 시인은 시를 정의하지 않는 게 옳다고 본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대답을 회피하였다. 하지만 2부에서 시 창작 활동에 관한 질문에는 그의 심오한 견해가 술술 풀려나왔다.
■ 2부, 장단이 바뀌며 찾아온 ‘만남의 순간’
2부는 미리 전달된 질문지를 바탕으로 보다 차분한 템포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대화는 깊이 면에서 절정으로 달리고 있었다.
유익서 작가는 “우리는 소설가가 아니라 가치 지향적 사유를 다루는 ‘작가’였다”며 자신의 창작 정체성을 설명했고,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며 오락에 헌신하라는 시대적 요구에 작가는 위기에 처해 있다.”고 강조했다.
이중도 시인은 로컬리즘과 신화적 상상력에 대해, 어디 멀리 떠나지 못하는 현실적 제약이 오히려 자신을 통영이라는 한 자리에 단단히 붙들어두었고, 그 ‘붙드는 힘’이 시의 원천이 되었다고 말했다. “멀리 가지 못하니 오히려 이곳이 끝없는 탐구의 대상이 되더라”는 그의 말에 객석에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포크너와 마르케스 같은 로컬리즘의 거장들에서 시작해, 동아시아 신화가 폭발적으로 소개되던 시기에 《삼국유사》와 중국 신화 텍스트를 ‘종일 파고들 수 있던 시간’이 자신의 저수지를 채워준 결정적 계기였다고 회상했다. 그러한 누적된 공부가 《고래 서방》과 《그 달이 시를 쓴다》 같은 작업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은 관객들에게 그의 시적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상당히 명확한 그림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 두 작가가 남긴 절정의 메시지 — ‘작품의 자산은 공부다’
작가와의 대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두 작가 모두가 “작품은 결국 축적의 결과”임을 한목소리로 강조한 대목이었다.
유익서 작가는 사회자의 질문에 답하며 “나는 소설가가 아니라 작가이고, 소설이 아니라 작품을 쓰고자 한다.”는 신념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소리에 관한 작품을 쓰기 위해 4~5년의 공부를 축적했고, 이번 신작에는 무려 9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털어놓았다. 한 작품을 위해 쌓는 이 묵묵한 탐구가 그의 서사 구조와 세계관을 떠받치는 가장 단단한 기반임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반면 사회자의 끈질긴 질문에도 끝내 “작품은 세상에 나온 뒤에는 이미 작가를 떠난 것”이라며 말끝을 아끼던 이중도 시인은, 단 한 가지는 분명히 했다. 그는 “나는 나를 쓰지 않는다.”며, 대신 구체적 사물들을 오래 관찰하고 탐구하면 시가 절로 쓰인다는 취지의 고백을 했다. 그의 말은 마치 “대상에 공부를 쏟아부으니, 결국 그 대상이 시를 토해냈다.”는 역설적 진술처럼 들렸다. ‘그 달이 시를 쓴다’는 신작 시집의 제목이자 타이틀 시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창작관은 아마도 그의 시 전체에 해당될 듯하다.
두 작가의 표현은 달랐으나, 그들이 말한 취지는 같은 듯하다. 작품은 누적된 공부 끝에 오는 ‘뻥 뚫림’ 같은 것이다. 장중한 여운 속에 무대를 닫은 한국 근대 무용의 유산, 자유[해탈]를 향한 염원을 담은 '가사호접'은 이 묵직한 진리에 가장 완벽하게 화답하는 예술적 방점이었다.